2012.04.17 끄적끄적

좋은 피디는 팀원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

좋은 기획은 피디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것일 뿐.

- 수습 3주 차에 드는 오만한 생각


[인도]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힌두교도들이 신성한 강 갠지스(강가)에서 목욕을 하듯 시크교도들은 황금사원 내 호수에서 목욕을 했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사원으로 향하는 수많은 시크교도들의 행렬.



황금사원은 밤에 더 빛난다.


 황금사원에 가면 무료 도미토리와 무료 식사가 제공된다. 원래도 식성이 좋지만 황금사원에서 주는 밥을 참 맛있게 먹었었다. 기본적으로 두장의 짜파티를 주었는데 금새 다 먹고 또 달라고 두 손을 공손히 들고 있으니 주변의 시크교도들이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했었다. 낯선 이방인 여행자들에게도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것들을 베푸는 시크교도들의 덕분에 마음까지 배불렀다.

[인도] 조용한 사막마을 쿠리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자이살메르에서 로컬버스로 한 시간 반정도(였던거 같다) 거리에 있는 쿠리.
이전보다는 많이 개발되었다고는하나 여전히 조용한 사막마을이었다. 관광객도 손에 꼽을 정도이고.
4개월간의 여행 중에 가장 조용한 곳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반나절만 머물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고요함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사막마을의 잘 어울리는 노란 옷을 입은 꼬마아이





 다리를 다친 한 녀석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소리치며 돌을 던지려했다. 왜 저러나 싶기도 해 가까이가 말해보려하니 더 날뛰며 소리쳤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아마도 이전에 왔던 관광객과 안좋은 일이 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쿠리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한 할아버지가 자이살메르에가서 팔 요량인지 염소 한마리를 데리고 탔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설마 저 염소가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않겠지 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염소의 아우라. 어느덧 염소는 딱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염소와의 부비부비. 온몸으로 느낀 염소는 생각보다 크고 무서웠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인도] 바닷마을, 디우(Diu)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난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익숙한 것이라 소중함을 모를 법도 한데 난 바다가 좋았다. 지금까지도 쭈욱.
사람들이 힘이 들 때 바다를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내가 해온 고민이 한 없이 작아진다. 작아진 고민을 잘 뭉쳐서 던지면 저 끝없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지금도 낚시를 즐기시는 아버지는 어릴 적 나와 형을 데리고 곧잘 바다로 가셨다. 잡은 물고기에서 바늘을 빼내지도, 지렁이를 바늘에 제대로 끼우지도 못했지만 그런 어릴 적 나에게도 잡히는 물고기가 있어 바다는 내게 신기하고 또 즐거운 놀이터이기도 했다. 망상어, 돌돔, 쥐치, 뽈락, 벵에돔 , 복어, 그리고 불가사리까지 (아! 한번은 다른 사람이 놓친 낚싯대가 걸리기도 했었다.) 바다에서 생명들이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속이 보이지 않는 바닷속의 수많은 생명들은 지금까지도 내 호기심의 주요 고객이다. 요즘에도 가끔 심해어 사진을 들춰보고 우연히 TV에서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하면 목이 빠져라 집중해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여행 사진은 인도 서부의 바닷마을, 디우 특집이다! 보통 인도 여행을 떠나는 한국 여행자들은 두 가지 바다 마을을 많이 찾는다. 오늘 소개하려는 디우와 크리스마스 파티로 유명한 고아가 그것이다. 조금 더 시끌벅적한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후자를,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면 디우를 많이 찾는 편이다. 나는 여행 루트상 가깝기도 하고 조용하게 바다를 즐기고 싶기도 해 디우를 갔었다. 오늘은 디우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 중 몇 장을 추려 소개한다.


          지는 노을의 찬란한 햇살 아래 낚시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대어를 낚지 못했지만 나는 멋진 한 장면을 낚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낚시를 즐기는 두 사람의 표정이 기억난다.



           곱게 사리를 차려입고 해변을 거닐던 인도 아가씨. 발걸음에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읇조리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저 곳에 불던 시원한 바람, 시야에 들어오는 탁 트인 바다가 좋아 매일 찾던 곳이다. 하루는 한 청년이 와 늘 그래왔다는 듯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누웠다. 누워있는 청년과 바다가 썩 잘 어울렸다.


 '액션라씨' 아저씨. 발리우드의 전설 BIg B, 아미타브 밧찬도 다녀갔다며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사실 라씨맛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는데 아저씨의 유쾌 상쾌 통쾌한 안무가 섞여서인지 끝내줬다. '음식 맛은 손맛이여' 의 디우식 해석이라고나 할까. '음식 맛은 춤맛이여'


  바다는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가 다 넘어갈 무렵의 디우는 이런 모습이었다. 오기를 부리는 듯한 붉은 기운의 해가 넘어가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사라진다.


 인도에 가면 한류스타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청년이 말하길 시골 마을에서 소풍 온 아이들이라 외국인을 더 신기해한다고 했다. 소풍이라고 한껏 멋내고 온 아이들 중 짙은 검은색의 선글라스를 낀 녀석이 눈에 띈다. 나 소풍 갔을 때도 꼭 저렇게 튀는 애들이 있었는데.


 자랑스런 한국의 '삼선 쓰레빠'를 수리 중인 디우 아저씨. 인도에 도착해서 크록스 짭퉁을 살때까지만 신으려고 들고 간 슬리퍼였는데 어쩌다보니 4달간의 여행을 잘 마치고 다시 집에 와 있다. 양쪽 두군데 씩 도합 4곳의 대 수술을 한 후에야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 디우에서가 3번째 수술이었던 것 같다. 나를 쳐다보면서도 아저씨의 손놀림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장인의 손길로 죽어가던 슬리퍼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역시 디우하면 피쉬마켓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아침에 열리는 수산물 장에 가서 먹고 싶은 것들을 잘 흥정해서 사다가 바닷가에 가서 요령껏 모닥불을 피우고 구워먹어도 되고, 숙소나 식당에서 부엌을 빌려 요리를 해먹어도 되고, 아니면 식당에서 요리값을 주고 부탁해도 좋다. 소금간을 하고 삶아도 되고 불에다 구워도 되고, 가져간 고추장이 있다면 찍어먹어도 좋다. 해산물을 바라보는 고양이도 같은 생각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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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달빛 - 없는게 메리트 듣기


옥상달빛 - 없는게 메리트


"주머니 속의 용기를 꺼내보고 오늘도 웃는다"







어제 나는 큰 용기를 냈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가 한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것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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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이스(미국판 '보이스 코리아') 우승자 - javier colon 듣기



javier - crazy

지난 금요일 밤 또 하나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슈스케에 이어 위대한 탄생, k팝스타, 탑밴드, 오페라스타, 쩌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메이드인유까지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의 흥미가 떨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엠넷의 '보이스 코리아'는 이를 비웃듯이 다음날 포털사이트 검색순위를 장악하며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의 실력이 화제였다. 오직 목소리로만 승부한다는 컨셉 아래 그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을 꺼려왔던 라이브카페 가수, 보컬 트레이너 등의 실력자들이 대거 참가한 탓이다.

또한 기존의 프로그램들은 예선 과정에서 노래 실력 못지 않게 출연자들의 끼, 외모, 퍼포먼스를 강조해왔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표격인 슈스케는 락통령, 힙통령, 뻥통령 등의 개그 캐릭터를 통해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보이스 코리아에는 그런 예선은 없었다. 이미 예선을 거친 실력자들이 새로운 편곡, 멋진 연주와 함께 무대에 섰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뮤직뱅크에 어울리는 가수를 만들고자 했었다면 보이스코리아는 나가수에 나갈만한 재목을 뽑는 자리 같았다. 첫회 시청률이 2프로를 넘겼고 이는 슈스케 첫방과 비슷하다고 하니 앞으로의 시청률 상승세도 지켜볼만 하겠다.

보이스코리아 얘기를 꺼낸 것은 javier colon의 음악을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조금 돌아왔지만 이제 javier 얘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까지 얘기한 보이스코리아는 판권을 구매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포맷을 미국에서 수입해 '더 보이스'라는 이름으로 방송했었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보이스코리아'로 방송을 시작했다. javier는 미국에서 제작해 방송했던 '더 보이스'의 우승자였다.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더 보이스'의 출연자들 역시 무시무시했다. 날고 긴다는 무림 고수들 중에서도 최강 고수로 등극한 이가 바로 javier다. 하지만 그는 '더 보이스'의 우승자이기 이전에 가수였다. 2개의 앨범을 냈던 가수.

내가 하비에르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05년도 였다. 나와 음악적 취향이 비슷했던 친구가 추천해줘 듣게 되었는데 바로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아래의 노래를 듣는다면 그의 목소리의 매력을 한층 더 잘 알수 있다.



javier - october sky


당시 내가 자주가던 흑인음악 인터넷 카페에서는 하비에르의 노래가 꽤 인기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앨범 성적이 신통치 않았나보다. 그가 '더 보이스'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부인과 아이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는 글을 읽었다. 두 장의 앨범을 낸 가수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다른 가수의 지도를 받으며 과정을 진행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을위해서 그리고 가수인 스스로의 음악 인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전했다. 기타 반주와 목소리를 가지고.

좋은 실력을 가졌지만 운때가 맞지 않았던 javier. 이제 새로운 날개를 얻었으니 훨훨 날아오를 시간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된다.

마지막은 javier가 그의 코치maroon5의 보컬 Adam과 함께 한 'Man in the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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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자이살메르성의 크리켓하는 아이들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인도 사람들은 크리켓을 정말 좋아한다. 유명한 크리켓 선수(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은 모르는)는 tv광고나 신문광고에서도 매우 자주 볼 수 있었다. 고작 3개월을 그곳에서 여행한 나도 수 없이 봐서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이니 아마 그 선수는 우리나라로치면 박지성 선수 정도의 인기가 아닐까? 크리켓의 인기는 곳곳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자이살메르성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내가 지난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의 하나이다. 해질 무렵 자이살메르 성의 아름다운 붉은 빛 아래 온 집중을 다해 공을 던지고 그것을 치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혹시나 방해가 될까 아주 조용히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다. 한 쪽 발이 들린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숙인 채로 숨죽이며 공을 기다리는 타자에게로 날아간다. 날아오는 공을 기다리는 아이의 표정은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미간은 조금 찡그러졌고 유난히도 큰 인도 아이의 눈은 공에 대한 집중으로 더 또렷해져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크리켓에 집중한 두 아이의 마음이 사진에 오롯히 담겨있어서이다. 날아가는 공은 이제 더 이상 투수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을 기다리는 타자의 것도 아니다. 사진에는 바로 그 순간이 담겨 있어 공을 던진 아이와 치는 녀석의 역동적인 찰나가 느껴진다. 게다가 그 위에는 아름다운 노을빛을 머금은 메헤랑가드 성이 여백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다가가 말을 걸려다 그만두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낯선 얼굴빛의 이방인이 자신들을 지켜보는 것을 모르는 채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공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렇게 사진으로 남아 있다.

ps.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내 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보다 잘나온 사진 몇장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푼힐에선 일출 풍경을 찍겠다고, 네팔 치트완 국립공원에선 야생동물 찍어보겠다고 수없이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음 여행을 떠난다면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시와 - '랄랄라', '잘 가, 봄' 듣기


- 시와 , '랄랄라' -



지난 주말, 시와의 앨범 발매 콘서트를 다녀왔다. 내게 시와를 소개해준 그녀와 함께.

신촌콘서트에서 그녀의 라이브를 들었던 적이 있지만 온전히 두 시간을 그녀만의 노래로 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와는 자신이 직접 쓴 멜로디에 자신의 속 얘기를 가사로 붙인 뒤 그것을 아주 꼭꼭 씹어 소화시킨 것을 다시 꺼내어 들려준다.

화려함은 없지만 무척이나 내밀하고 단단한 목소리다. 힘이 없는 듯 들리기도 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음성이다.

시와의 목소리는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듣는 이의 마음의 벽을 슬그머니 넘어 가닿는다.

공연장을 자주 찾지는 않지만 시와의 공연은 또 찾을 것 같다. 노래 한곡을 더 소개한다.



- 시와, '잘 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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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펠링에서 만난 꼬마 아이 둘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그저 좋았던 기억만 남아 있는 펠링에서 동네 마실중에 만난 꼬마 아이 둘이다. 이 녀석들을 처음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이 녀석들은 자기 동네 뒷산 칸첸중가가 얼마나 크고 높은 산인지 알까? 이런 산을 끼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까? 하는 생각 말이다.

녀석들은 아이다운 순수한 웃음으로 답을 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그저 해맑은 미소로 말하는 녀석들의 모습에서 이것이 '염화시중'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덕 언저리에서부터 무작정 뛰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둘이서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다 큰 성인인 내가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로 무척 빨랐다. 불편해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힘들게 따라가는 내게 큰 웃음소리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보여줬던 기억도 생생하다.

벌써 이 두 꼬마를 본 지도 1년이 지났다. 아마 사진의 모습보다는 훌쩍 커 있겠지? 키도 크고 얼굴도 조금은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고운 미소와 둘의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칸첸중가의 장엄함은 그대로일 것이다.

[인도] 뭄바이 더듬어보는 여행의 기억

오늘 오후 문득 뭄바이가 떠올랐다. 나시티를 입고 복대 가방을 허리춤에 찬 하얀 얼굴의 나와 어울리지 않던 그 도시.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순간적으로 눈 앞에 그때 그 풍경이 펼쳐지고 그곳의 냄새가 났다.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그곳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혼자 처음으로 떠나는 배낭여행, 그것도 문화도 기후도 많이 낯선 인도 였기에, 뭄바이에 도착한 나는 많이 긴장해 있었다. 더군다나 늦은 밤 도착한 뭄바이에서 처음 맞이한 풍경이 길 위의 부랑자들이었기에 낯섦이 더했다. 4달간의 여행 중 가장 비싼 방에 속하는 460루피의 방은 나를 더욱 당혹케 했다. 물가가 높기로 소문난 뭄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숙소가 이런 상태일 줄은 몰랐다. (이후 여행에서 100~200루피의 훌륭한 숙소를 묵으며 이곳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 ) 천장은 모두 뚫려있어 의도치 않은 원활한 소통을 꾀할 수 있었다.

특히나 더위에 약한 나에게는 그 때의 습기와 온도가 잊혀지질 않는다. 불과 몇 시간 전의 한국에선 꽤나 쌀쌀한 날씨에 외투까지 입고 있었는데 그곳에선 옷가지를 훌훌 벗어버렸다. 옷과 함께 내가 가지고 온 고정관념도 벗어야 했다. 사람들의 외모,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기후, 음식, 하물며 숙소의 개념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그래서 처음엔 꽤나 황당했다. 여행 첫날의 설렘은 금세 가라앉았고 어느덧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아마 지금 기억에 내가 그곳에서 처음 웃었던 것은 다음날이었다.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난 뒤 처음으로 릭샤를 잡아 타고는 역으로 갔다. 나시만 입어도 땀이 흥건해지는 더위와 생각보다 더 높은 물가에 뭄바이를 빨리 뜨고 싶었었다. 외국인 창구에서 다행이도 표를 예매할 수 있었고 마음에 안정을 찾은 나는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역에서부터 게이트웨이오브인디아까지. 사실 지독한 길치인 나는 한 번에 길을 제대로 찾은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의외의 수확이 종종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아주 큰 나무 그늘 아래 작은 마차(?)를 세워놓고 은색 통을 마구 휘젓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궁금해서 다가갔다. 뭔가 하고 쳐다보니 하얀요구르트같은 것이었다. 아하, 저것이 바로 라씨구나. 한잔 달라고 했다. 아마 내 기억엔 10루피였던것 같다.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내 표정은 극적으로 변했다. 정말 맛있었다. 이후 4달간 수 많은 라씨를 마셨지만 그때 마신 그 라씨가 단연코 최고였다. 마침 배도 고팠던 차라 라씨를 흡입하고는 또 한잔을 부탁했다. 두번째 잔이라 맛이 덜할 법도 한데 정말 맛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에 침이 고인다. 자이살메르에서 마셨던 라씨도 무척 맛있었는데, 황당함을 씻겨 내려준 청년의 핸드메이드 라씨만큼은 아니었다. 혹시나 뭄바이에 갈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위치는 뭄바이 센터 역(?)에서 게이트웨이오브인디아쪽으로 이렇게 저렇게 가다보면 있다. 길치라면 더 찾기 쉬울 것이다.

뭄바이하면 탄두리치킨도 빼먹을 수 없다. 라씨로 허기를 채웠지만 더운 날씨에 이리저리 헤매며 다니다 보니 금새 배가 고파졌다. 아직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차라 점심 겸 저녁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가이드북에 탄두리가 아주 맛있다고 소개된 식당. (D로 시작했던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이 기억갔 안난다.) 어렵게 어렵게 식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꽤나 고급 식당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행색이 조금 부끄러웠다. 얼굴에는 흘러내린 선크림이 덕지덕지 묻어있고 후줄근한 흰색 나시티에 반바지, 그리고 복대,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복대 옆에 걸쳐놓은 걸레같은 수건까지. 반면 그 식당에 출입하는 현지인들은 아주 매끈했다. 딱 보기에도 꽤나 사는 집 사람들 같았다. 매니저가 안내한 자리에 앉아 탄두리 반마리와 음료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으려는데 깜짝 놀랐다. 화장실앞에 문을 열어주고 안내하는 전담 직원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안에서도 놀라움은 이어졌다. 전자동으로 작동하는 거품 비누기(?)가 있었다. 한국에서손으로 눌러 비누거품이 나오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전자버튼 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그 식당에서 처음 보았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인도는 정말 차이가 큰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날 나를 처음 맞아주던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빈민들의 모습, 그리고 화장실을 안내하는 종업원이 따로 있는 고급 식당까지 이틀 사이에 너무 다른 인도를 겪고 있었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어느 정도의 운에 따라 개개인이 축적하는 부는 천양지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심각한 빈부격차를 직접 마주했을때 가지게되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그날 먹었던 탄두리는 정말 맛있었지만 그것과 함께 개운치않은 뒷맛을 가지고 나왔다.

고작 일박 이일동안의 뭄바이였지만 돌이켜보니 쓸말이 많다. 이쯤에서 끝내야 하는데 싶다가도 어느새 글이 이어진다. 기억이 이어지는만큼 글로써 남기고 싶다. 아직은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뭄바이를 놓치지 않고 적어내려가고 싶다.

뭄바이에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두 꼬마이다. 지금은 그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사진을 찾아 본다면 '아 그래, 이 녀석들이었지'하며 기억이 날 텐데. 두 친구는 도비가트에서 괜히 겁에 질려 우물쭈물하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기네 삼촌과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며 겁낼 것없이 같이 들어가서 구경하자고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워보일수가 없었다.덕분에 나는 다른 관광객들이 멀찌감치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데 반해 도비가트 내를 휘저으며 생생한 모습을 내 눈과 그리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둘은 도비가트에서부터 뭄바이의 이곳 저곳을 함께 걸어다니며 안내해주었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자기들이 잘 아는 호텔이 있다며 뻔히 보이는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지만, 난 이제 기차역으로 가야한다는 말에 자신들의 호객행위가 부끄럽다는 듯이 금세 포기하며 잘가라는 그들의 모습에 괜히 내가 미안해졌었다. 그 두 녀석이 좋은 꿈을 꾸며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길에서 여행자를 만나 좋은 기억을 남겨줄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뭄바이 일박이일은 마무리 되었다. 해가 질 무렵 기차역에 도착해 간단히 요기를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인도에서 처음타는 기차,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침대칸이었다. 열악한 시설이지만 처음이 주는 설렘과 다음날이면 도착할 아우랑가바드에 대한 기대로 신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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